고대문명의 거대 두상
본문
(멕시코 할라파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중인 거대두상 4호)
올멕 거대두상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전 400년경까지 현재의 멕시코만 연안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문명, 올멕이 남긴 거대한 석조 유물이다.
현재까지 산로렌소에서 10기, 라벤타에서 4기 등 총 17기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단일 현무암 암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적게는 6톤에서 많게는 50톤에 이르는 압도적인 크기와 무게를 자랑한다.
고도의 금속 기술이나 운반 장비가 없던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수수께끼 중 하나로 꼽힌다.
야금술이 발달하지 않은 석기시대에 이토록 단단하고 거대한 화산암을 정교하게 조각해 낸 공학적 기술에 학계의 이목이 쏠린다.
올멕 문명은 청동이나 철 같은 금속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학자들은 올멕인들이 현무암보다 더 단단한 성질을 지닌 규석이나 도끼붙이 같은 석기 도구를 사용하여 바위 표면을 수없이 타격하고 마찰시키는 방식으로 형태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속 정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의 노동력과 원시적인 도구만으로 눈꺼풀의 주름, 두꺼운 입술, 투구의 미세한 문양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장인 정신은 현대 학계에서도 경이로운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수십 톤에 달하는 이 거대한 암석들을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중심지까지 이동시킨 운반 경로와 방법도 거대한 수수께끼다.
거대두상이 발견된 유적지 주변에는 이와 같은 현무암 지형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 돌들의 원산지는 최소 60km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투스틀라스 산맥으로 밝혀졌다.
당시 올멕인들에게는 바퀴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말이나 소와 같이 무거운 짐을 끌 수 있는 대형 가축도 전무했다.
결국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땅 위에 통나무를 깔고 그 위로 돌을 굴렸거나, 우기철에 강물이 불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거대한 뗏목에 바위를 실어 하천을 통해 운반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상이 나타내는 독특한 신체적 특징과 그것이 상징하는 인종적 기원에 관한 논쟁도 주목받는다.
거대두상들은 공통적으로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다소 처진 눈매를 지니고 있는데, 이 이국적인 용모 때문에 과거 일각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인구 집단이 고대에 대서양을 건너와 올멕 문명을 건설했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유전학적 조사와 고고학적 분석을 통해 이 얼굴들은 아프리카인이 아닌, 실제 당대 멕시코만 연안에 거주하던 아메리카 원주민 계통의 안면 특징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임이 밝혀지며 인종적 의문은 일단락되었다.
이 거대한 머리 조각들이 도대체 누구를 모델로 삼았으며,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었는가에 대한 신원 파악 역시 주요 연구 대상이다.
17기의 두상들은 저마다 고유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으며,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 모양의 보호구에 새겨진 상징적 문양 역시 모두 제각각이다.
고고학계는 이를 바탕으로 이 유물들이 단순한 신들의 우상이 아니라, 올멕 사회를 통치했던 실존 체육가나 강력한 군주들의 개별적인 초상화라고 결론지었다.
즉, 지배자의 사후 혹은 재위 기간에 그의 강력한 권력과 신성함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영원히 기리기 위해 제작된 정치적·종교적 기념물이라는 해석이다.
유물들의 보존 상태에서 발견된 기이한 훼손과 매장의 흔적도 의문을 자아낸다.
발견된 두상 중 상당수는 인위적으로 표면이 긁히거나 구멍이 뚫려 있으며, 어떤 것들은 땅속에 깊이 묻힌 채 발견되었다.
과거에는 이를 적대 세력의 침략으로 인한 문명의 파괴 흔적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올멕 내부의 종교적 의식이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왕이 사망하거나 새로운 통치 주기가 시작될 때 기존 왕의 영혼을 봉인하거나 그 권력을 지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처를 내고 정중하게 의례적인 매장을 거쳤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고고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이 거대두상들이 원래 거대한 석조 왕좌를 재활용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올멕의 통치자들은 생전에 사각형의 거대한 현무암 단상인 왕좌에 앉아 권력을 행사했는데, 그 왕좌의 주인이 사망하면 귀중한 자원인 대형 암석을 그대로 낭비하지 않고 왕의 얼굴 형태로 다시 깎아내어 거대두상을 재창조했던 흔적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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